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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386
정치 참여 선언 직후 선친 장례식으로 주목
“세상을 밝혀라” 선친 유언 공개 정치 행보
석동현 변호사 “정치 하면 다 잃는다” 조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7월 8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부친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 빈소 앞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빈소 조문을 마치고 자리를 뜨자 취재진을 만나 입장을 밝히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행보가 정가의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감사원장을 사퇴하며 “대한민국의 앞날을 위해 제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숙고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한 것이 지난 6월28일이었습니다.
9일 뒤인 7월7일 와 통화에서 “정치에 참여하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인 7월 8일 아버지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이 별세했습니다.
최재형 전 원장은 아버지가 “대한민국을 밝혀라”라고 쓴 유서와 “소신껏 하라”고 한 유언을 공개했습니다. 여야의 수많은 정치인이 조문객으로 빈소를 찾아 최재형 전 원장을 위로했습니다. 정치에 대한 얘기를 나누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정치에서는 다른 정치인과의 만남 자체가 정치적 의미를 갖습니다.
최재형 전 원장은 7월 9일 기자들과 만나 감사원장에 임명되기 전날 부친이 준 글귀에 대해 대화를 나눴습니다.
‘단기출진(單騎出陣) 불면고전(不免苦戰) 천우신조(天佑神助) 탕정구국(蕩定救國)’입니다. “홀로 출진하니 고전을 면하기 어려우나 하늘의 도움으로 난을 평정하고 나라를 구한다”는 의미입니다. 기사에 따르면 최재형 전 원장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감사원장을 잘하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감사원장을 제대로 잘해서 나라의 공직 질서를 바로잡으라는 뜻으로 써주셨을 것이다. 지금에 와서는 제 처지와 오버랩되는 부분이 있긴 하다. 어떻게 보면 (정치 참여는)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던 상황인데, 그게 또 저한테 힘이 될 수도 있는 해석도 가능은 하겠다.”
감사원장이 될 때 써줬지만 지금 대선주자로 나서는 자신에게 필요한 글귀라는 의미입니다. 이 정도면 대선주자로 나서겠다는 심중을 충분히 드러낸 것 같습니다.
아무튼 선친 장례를 계기로 최재형 전 원장이 자연스럽게 대선 출마를 기정사실로 한 것이나 다름이 없는 모양새가 됐습니다. 이제 정가의 관심은 최재형 전 원장이 언제, 어떤 명분으로, 어떤 사람들과 함께 20대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느냐에 쏠리는 것 같습니다.
대선주자로서 최재형 전 원장의 강점은 무엇일까요?
최재형 전 원장은 1956년생입니다. 65세입니다. 대통령 하기 딱 좋은 나이인 것 같습니다. 경기고와 서울법대를 나와 오랫동안 판사를 한 법조 엘리트입니다.
최재형 전 원장에게 어울리는 단어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들 수 있겠습니다. 그에게는 수많은 미담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만난 소아마비 친구를 업고 학교에 다녔고 함께 사법시험에 합격했습니다. 두 아들을 입양해서 키웠습니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 신촌교회 장로입니다. 군 복무도 마쳤습니다.
게다가 최재형 전 원장은 ‘반문재인 보수 세력’의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반문재인 보수 세력’이 그를 지원하는 이유가 뭘까요?
가장 큰 이유는 문재인 대통령과 현 정부를 비판하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감사원이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감사를 하면서 감사원과 여권의 관계가 악화했습니다. 어느 정부든 감사원의 고강도 감사에는 피감기관과의 마찰이 따릅니다.
그런데 반문재인 보수 세력은 최재형 감사원장에게 ‘원칙을 지키는 강직한 법조인’의 이미지를 부여하고 그를 ‘반문재인의 기수’로 호출했습니다. 최재형 감사원장도 보수 세력의 이런 호출에 부응했습니다. 임기를 마치지 않고 감사원장직에서 물러난 것입니다.
6월 28일 감사원장에서 사퇴한 다음 날 는 ‘검찰총장·감사원장이 정치 선언하는 초유의 사태’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습니다. “정치적 중립성 훼손 시비가 인다면 그걸 감수해야 하는 건 그들의 몫”이라면서도 “문재인 정권의 전횡과 폭주, 법치의 훼손이 이들을 정치의 길로 불러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논리 비약입니다. 대통령이나 청와대와 갈등을 빚은 기관장이 권력의 부당한 개입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해당 기관장이 임기 도중 사퇴하고 대통령에 출마하는 것이 옳은가요? 정부 기관 간의 갈등과 기관장의 대선 출마는 전혀 별개의 사안인데도 갈등을 핑계로 이들의 대선 출마를 정당화하는 것은 명백한 궤변입니다.
도 ‘감사원장이 임기 도중 사퇴하고 야 대선후보로 뜨는 현실’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습니다. 그래도 는 “감사원장 중도 사퇴에 대한 비판을 감수하고라도 왜 정치판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는 건지, 어떤 국가를 만들겠다는 건지에 대한 ‘답’을 속히 내놔야 한다”고 최재형 전 원장에게 충고라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최재형 전 원장의 대선 가도가 활짝 열린 것일까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최재형 전 원장은 거의 평생을 법조인으로 산 사람입니다. 법조인의 길과 정치인의 길은 전혀 다릅니다. 하물며 대통령은 정치인 중의 정치인입니다.
지금까지 법조인에서 곧바로 대통령이 된 사람은 한명도 없었습니다. 법조인 출신으로 정치에 입문한 뒤 정당과 국회의 경험을 쌓아 대통령이 된 사람은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이 있습니다. 낙선자로는 이회창 전 총재, 이인제 전 의원, 홍준표 의원 등이 있습니다.
이회창 전 총재는 거의 평생 법관으로 일하다가 김영삼 정부에서 감사원장, 국무총리로 발탁됐습니다. 1996년 총선에서 신한국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정치에 입문한 뒤 파란만장한 정치 역정을 겪었습니다.
비슷한 경력을 가진 사람으로는 김황식 전 국무총리가 있습니다. 대법관을 하다가 이명박 정부에서 감사원장으로 발탁됐고 국무총리도 오랫동안 했습니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새누리당 후보 경선에 나섰지만, 정몽준 후보에게 패했습니다.
최재형 전 원장은 이회창 전 총재보다는 김황식 전 국무총리와 좀 많이 닮은 것 같습니다. 정치 경험이 없는데도 ‘큰 정치’를 해보겠다고 용감하게 나섰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따라서 그의 정치적 앞날도 어둡다고 봐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를 대선주자로 호출한 사람들이 그를 정말로 대통령까지 시켜줄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최근 반문재인 보수 세력이 최재형 전 원장을 대선주자로 강하게 미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윤석열 전 총장이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윤석열 전 총장은 장모 구속 이후 여론조사에서 지지도가 하락세에 접어들었습니다. 앞으로 계속 떨어질 것 같습니다.
둘째, 홍준표 유승민 원희룡 안철수 등 국민의힘 안팎에 있는 대선주자들의 지지도가 너무 낮습니다. 국민의힘 대선주자 경선과 야권의 합종연횡이 본궤도에 오르려면 시간이 좀 필요합니다.
야권에는 그때까지 대선 경쟁을 이끌어줄 ‘페이스 메이커’가 필요합니다. 쉽게 말해서 최재형 전 원장을 야권 대선 경쟁의 ‘불쏘시개’로 쓰려는 속셈입니다.
검사 출신 변호사로 새누리당 부산 해운대갑 당협위원장을 지냈던 석동현 변호사가 얼마 전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지금은 없어졌습니다.
최재형 원장님, 오판(誤判)하지 마십시오.
법조계의 군계일학이신 원장님!
자리를 끝까지 지키고 버티지 못한 것이 아쉬우나, 이 시기에 곧바로 정치판으로 들어가는 것, 선거판에 뛰어드는 것은 분명한 오판입니다.
이 정권이 무도하여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더라도, 그래도 원장님은 정치하시면 안 됩니다.
무엇보다 생리에 안 맞습니다. 다 잃고 맙니다.
다 잃을 때 아무도 돌아봐 주지 않습니다.
사법 관직에 있다가 곧바로 선거판에, 그것도 가장 큰 판에 뛰어드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아닙니다.
원장님은, 이미 나선 선수들이 내년 3월 대선에서 정권을 되찾아오면 그때 하실 역할이 많습니다.
그 역할이 더 맞고 또 훨씬 중요합니다.
그때를 위해 지금 옥체에 진흙을 묻히기보다 초야에서 현재의 맑은 이미지와 바른 정신을 계속 보존하십시오.
정치인들 아예 접촉도 하지 마십시오.
원장님께 지금 출마를 권하는 이들은 원장님을 생각해서가 아닙니다. 자신들의 욕심 때문입니다.
어떻습니까? 저는 석동현 변호사가 최재형 전 원장에게 대단히 중요한 조언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쉽게 빠지는 함정이 있습니다.
“당신은 결심만 하면 된다. 모든 것은 우리가 다 알아서 해주겠다.”
정치할까 말까 주저하는 사람이 듣게 되는 말입니다. 그러나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는 순간 모든 일을 혼자서 다 처리해야 합니다. 어려운 결정은 혼자 해야 합니다. 정치자금도 알아서 마련해야 하고, 일이 잘못될 경우 책임도 혼자 뒤집어써야 합니다.
2017년 1월 대선에 나섰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국회에서 각 정당 대표들을 예방하다가 갑자기 국회 기자실에서 불출마 선언을 했습니다. 불출마 선언 직전 만난 사람은 심상정 정의당 대표였습니다. 심상정 대표는 그 순간을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내 방에 오셨길래 한두 마디 덕담했다. 그런데 갈 생각을 않고 망설이시더라.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만지작거렸다. 그게 뭔지 잘 몰랐다. 조언을 한 마디 더 해 드렸다. ‘정치는 다 자기 책임으로 하는 것이다. 주위에서 알아서 해준다는 말 믿지 마시라’고 했다. 갑자기 반 총장 표정이 달라지더니 ‘그렇지요? 고맙다’고 말하고 나갔다. 그 길로 곧장 국회 기자실로 가서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읽더라. 불출마 선언이었다. ‘다 알아서 해준다’는 말을 믿고 정치를 시작했는데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불출마 선언문을 써서 주머니에 넣어서 다니다가 내 말을 듣고 불출마를 결심한 것 같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2017년 2월 1일 오후 국회에서 심상정 정의당 대표와 만나 이야기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그렇습니다. 정치는 세속의 권력을 다루는 일입니다. 그중에서도 대통령 선거는 정점입니다. 매우 어렵고 위험합니다. 정치인으로 상당한 훈련과 경험을 쌓고도 실패할 가능성이 훨씬 더 큽니다. 평생 판사만 한 사람이 나설 자리가 아닙니다.
최재형 전 원장 선친이 남긴 유언 “대한민국을 밝혀라”라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최재형 전 원장은 그동안 감사원의 역할을 소금에 자주 비유했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라.”
마태복음 5장 성경 말씀입니다. 목사님들이 자주 하는 설교 제목입니다. 기독교 계통 학교의 교훈으로 많이 사용되는 구절입니다.
이 말은 세상을 위해서 봉사하라는 의미입니다.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쓸모 있는 사람이 되라는 뜻입니다. 세속의 권력을 장악하라는 명령으로 새기면 안 될 것입니다.
대통령은 종교인이나 법조인이 봉사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자리입니다. 세속에 밝은 정치인만이 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성경에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신약성서 여러 곳에 나오는데, 해석이 무척 어려운 구절입니다. 그래도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최재형 전 원장이 잘 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재형 전 원장만이라도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잘못된 길을 따라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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