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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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요즘 전세 매물이 늘고 전셋값도 내리고 있다. 뉴스1
최근 서울 주요 재건축 아파트 단지의 전세 매물이 크게 늘었다. 지난 12일 재건축 단지 조합원이 새 아파트 분양권을 얻으려면 2년간 실거주해야 한다는 정부의 규제 방안이 논란 끝에 전면 백지화된 이후 매물이 갑자기 증가했다.
'재건축 2년 실거주'백지화 이후 전세 매물 급증
개포 현대1차, 상계주공 6단지 등서도 매물증가
20일 부동산 정보제공업체 아실(아파트 실거래가)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전세 매물 수가 지난 12일 74건에서 일주일 만에 163건으로 120.2% 증가했다. 월세를 포함한 매물은 154건에서 278건으로 일주일 새 80.5%가 늘었다. 1979년 준공한 은마아파트는 서울의 대표적인 재건축 대상 단지로 꼽힌다.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6·17대책에 투기과열지구 내 재건축 조합원에게 2년 이상 실거주 의무를 부여하는 내용이 포함되자 300건에 달하던 은마아파트 전세 매물이 크게 줄었다. 집주인이 조합원 분양권을 얻기 위해 세를 놨던 자기 집으로 들어와 '실거주 요건'을 채우려 하면서 전세 물량이 줄어드는 등 부작용이 나타난 것이다. 여기에 '임대차 2법'(계약갱신청구권제, 전·월세상한제)이 시행되면서 지난해 9월 말 4424가구의 전세 매물이 아예 사라지기도 했다. 그러면서 전셋값도 크게 뛰었다. 은마아파트 전용면적 74㎡의 경우 지난해 6월 최고 6억5000만원에 거래됐지만 올해 들어 최고가가 9억5000만원까지 뛰었다.
하지만 지난 12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이 내용을 빼기로 결정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전세난을 부추기는 등 시장 혼란만 가중했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결국 법안에서 빠지게 된 것이다. 이후 매물이 갑자기 늘면서 가격도 내리고 있다. 지난 9일 9억8000만원에 올라왔던 전용 76㎡(14층) 매물은 최근 전세 보증금을 8억7000만원으로 1억1000만원 내렸다. 같은 면적 1층에 7억5000만원에 내놓았던 매물도 5000만원을 내린 가격에 등록됐다.
정부가 주택공급 대책으로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과 공공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추진하지만 주요 재건축 대상 단지에선 차가운 반응을 보인다. 사진은 서울 마포구 성산시영아파트에 붙은 프래카드. 한은화 기자
다른 지역 재건축 단지에서도 전세 매물 증가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마포구 성산동의 성산시영(1986년 준공)은 일주일새 전세 매물이 100%(20→40건) 증가했다. 강남구 개포동 현대1차(1984년 준공) 34.7%(22→32건), 노원구 상계동 상계주공6단지(1988년 준공) 22.2%(45→55건) 등으로 전세 매물 증가세가 뚜렷했다. 서울 전체 아파트 전세 매물 역시 지난 12일과 비교해 1.1%(1만9810→2만46건) 증가했다.
재건축 단지 위주의 전세 물량 증가로 당장 서울 전세난에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7월 둘째 주(12일 기준) 서울의 아파트 전셋값이 0.13%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107주 동안 한주도 쉬지 않고 오르고 있다. 재건축 이주 수요 영향으로 서초구는 지난주 전셋값 상승률 0.30%를 기록했다. 최근에는 동작구, 양천구 등의 전셋값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재건축 단지 전세 공급이 서울 전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임병철 부동산114 리서치팀장은 "2년 실거주 요건에 해당했던 주요 재건축 단지의 전세 매물 증가가 전셋값 상승세에 일부 완충 역할을 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 이 단지들에서 나올 수 있는 물량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며 "전셋값 상승세가 수그러질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