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검사·경찰서장·유명앵커·교수…그들은 왜 '수산업자'에 넘어갔나 sns공유 더보기 머니투데이 수산업자를 사칭한 김모씨가 자신의 SNS에 올려 놓은 국회 사진. 김씨는 항상 슈퍼카를 몰고 다니며 사람들의 환심을 샀다. /사진=김씨 SNS 100억원대 사기 혐의를 받는 자칭 '수산업자' 김모씨(43)가 1000억원대 자산가라는 말에 속은 이들은 한국 사회의 저명인사들이다. 현직 부장검사, 경찰서장, 특별검사 등 수사기관 고위 관계자들을 비롯해 유력 정치인과 언론인, 대학교수와 이사장 등 쟁쟁한 인사들도 슈퍼카를 몰고 다니는 김씨의 모습을 믿고 그와 교류했다. 심지어 사기 피해자들은 수십억원대의 사기 피해를 입고도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통해 이른바 '인맥 사회'가 초래한 구조적인 문제점이 드러났다고 지적한다. ━ ━ 김씨의 사기 수법은 주로 사칭을 통해 이뤄졌다. 김씨가 2008년 피해자 11명을 대상으로 1억여원을 편취한 혐의로 2016년 징역 2년형을 선고 받았을 때도 그는 대구의 한 법률사무소 변호사 사무장을 사칭했다. 당시 30대던 김씨는 해당 법률사무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을 뿐이었지만 피해자들에게 '돈을 건네면 개인파산 절차를 완료해주겠다'고 속여 금품을 편취했다. 그는 자신을 회사를 운영하는 재력가로 소개하며 '빌딩을 구매하는데 수수료 자금이 필요하다'며 돈을 빌린 후 갚지 않기도 했다. 절박해진 피해자들이 빚을 독촉하자 '웃돈을 얹어 빌딩을 매각했는데 관련 세금 낼 돈을 마련해주면 돈을 갚겠다'며 추가로 돈을 받아냈다. 이외에도 다른 이를 사칭해 휴대폰을 개통하고, 정수기를 설치하는 등 사기 행각은 끝이 없었다. 2018년부터는 액수가 1억에서 100억으로 100배 뛰었지만 사기 수법은 유사했다. 2017년 특별사면으로 석방된 그는 1000억원대 자산가로 변신했다. 포항 구룡포항에 정박한 어선 수십대와 인근 풀빌라, 고가의 외제차량을 소유하는 것처럼 재력을 과시했다. 수산업자를 사칭한 김모씨가 자신의 SNS에 올려놓은 사진. 그는 포항에 OO물산이라는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으로 행세했다. /사진=김씨 SNS허풍 뿐이었던 그의 사기는 점점 현실처럼 견고해졌다. 교도소에서 만난 전직 언론인 송모씨를 통해 유력 정치인과 다른 언론인, 수사기관 인사들을 소개받으면서다. 그 과정에서 2019년에는 서울평화문화대상(봉사부문)을 수상했다. 한 인터넷 언론사 부회장, 한 체육단체 회장이라는 감투도 썼다. 김씨는 자신이 한국언론재단 소속이라고 사칭했으며 김부겸 국무총리, 문재인 대통령 등 현 정권과도 친분이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실제 그는 SNS 문재인 대통령의 글귀를 올려 놓고, 국회 앞을 찍은 사진도 올려놨다. 김씨는 결국 사칭한 지위를 통해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었다. 존재하지도 않는 선박 운용과 선동오징어 매매사업을 명목으로 투자금을 받았고, 이 자금으로 자신이 1000억원대 자산가라는 사기를 점점 현실로 만들었다. 그가 송모씨, 김무성 전 국회의원의 형, 사립대 교수 2명 등 총 7명의 피해자로부터 편취한 금액만 116억원에 달한다. 현재는 김씨가 언론·정관계 인사들에게 각종 선물과 금품을 건넸다는 의혹이 추가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나선 상황이다. 경찰은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부장검사 A씨, 총경 B씨,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 엄성섭 TV조선 앵커를 입건하고 총 12명에 대해 참고인 조사를 마쳤다. ━ ━ 그러나 피해자들은 수십억원 대에 피해를 받았음에도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실제로 이번 사건은 별도의 신고 없이 경찰이 직접 첩보 등을 통해 김씨의 사기 행각을 인지하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피해자들은 스스로 돈을 찾겠다며 김씨가 활동한 포항에 내려가 그를 수소문까지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인맥 사회가 낳은 구조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네트워킹을 많이하는 집단일수록 만나는 상대를 꼼꼼하게 보기보다는 '누구를 알고 있는가,' 누구로부터 소개를 받았나' 등을 따진다"며 "보통 한 다리 건너서 인맥을 구축하는데 중간에 소개한 사람이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확신하는 구조에서 이번 사태가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도 "사실 김씨의 본질적인 자질보다는 김씨를 소개해 준 사람이 믿을 만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본다"며 "(네트워크 특성상)한 명을 속이고 다른 이들에게 소개를 받아 사기를 치는 방식은 향후에도 재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평판 하락에 대한 우려에 피해자들이 신고에 나서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 교수는 "김씨가 주장한 배경으로부터의 공격, 네트워크 내 평판 하락에 대한 두려움 등이 작용해 신고하지 않았을 수 있다"며 "고소시 거액의 투자 자금 출처와 그 전달 과정을 공론화하는 과정을 겪어야하는데 이 역시 부담이었을 것"라고 밝혔다. 이 교수도 "지위를 가진 이들이 법적으로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이 부담된다고 여겨 고소에 나서지 않았을 수 있다"며 "사기를 당한 것을 비롯해 특혜 논란 등 본인이 주도적으로 처리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