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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곤의 웰페어노믹스-녹색복지국가를 향하여 ④왜 녹색복지국가인가?
한국사회정책학회에서 2021년 5월28일 연 ‘정의로운 생태전환과 새로운 복지국가’ 춘계학술대회의 특별좌담 세션에서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왼쪽)와 한상진 울산대 교수가 이창곤 한겨레신문 선임기자의 사회로 좌담을 벌이고 있다. 유튜브 제공
최근 생태위기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두 행사에 참석했다. 하나는 한국사회정책학회가 5월28일 연 ‘정의로운 생태전환과 새로운 복지국가’란 학술대회였고, 다른 하나는 ‘배곳 바람과 물’이 6월4일 연 ‘생명애 콜로키움’이었다. 참석자나 형식은 달랐지만 모두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생태전환을 놓고 이뤄진 토론장이었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았다.
한국사회정책학회가 주최한 학술대회는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와 한상진 울산대 교수의 좌담, 기후위기와 노동, 복지, 여성 등 각계 전문가가 모여 논의한 기획 세션과 공해 문제에 대한 일본의 경험을 다룬 한-일 세션 순으로 온종일 전개됐다. 특히 이번 학술대회는 사회정책 연구자들에게 “그동안 관심 밖이었던 생태적 지속가능성을 복지국가와 연관 지어 본격적으로 다룬 첫 공식 학술 토론장”(윤홍식 인하대 교수)이란 점에서 뜻깊은 행사였다.
생명애 콜로키움, 집단지성 공론장
생명애 콜로키엄은 2021년 1월부터 시작해 다달이 진행한 대화 모임으로 “기후위기 대응과 생태 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다양한 의제를 발굴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집단지성의 공론장”이다. 그동안 생태민주주의, 바이오크라시 등의 주제를 다뤘다. 이날은 탄소중립을 주제로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이 발표하고, 기후위기 전문가, 학자, 시민사회 활동가 등이 두루 참여해 의견을 나눴다.
배곳 바람과 물 연구소가 진행하는 대화 모임은 고 문순홍 박사 등이 한국 사회의 녹색화를 목표로 1995년 설립한 같은 이름의 연구소 활동을 잇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두 행사는 우리 사회에서 생태위기란 의제가 환경문제나 자연과학적 시선의 틀을 넘어, 인문사회과학계는 물론 정치권의 핵심 주제로 확장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게 아닐까 싶다.
기후위기, 나아가 생태위기 의제는 실상 매우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하여, 조효제 교수는 “비교할 수 없는 기준의 위기”라고 표현하며 이 이슈의 전방위적 성격을 말했다. 이유진 연구원도 “탄소중립을 위한 100가지 질문”이란 제목에서 함축하듯 이 의제가 얼마나 광범위하며 많은 질문을 자아내는지 보여주었다. 그만큼 문제 해결을 위해서 무엇보다 학제와 분야 간 장벽을 뛰어넘은 하이브리드형 대화 모임이 절실하다. 앞으로 두 행사와 같은 다양한 형태의 공론장이 활발히 모색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구촌 차원에서 기후위기를 인식하고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댄 것은 1992년 6월5일 세계 환경의 날에 맞춰 열린 리우 지구정상회의부터다. 하지만 당시 몇몇 선진국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나라는 이 의제에 큰 관심이 없었고 떠오르는 아시아의 용이었던 발전국가 한국엔 더더욱 그랬다.
이후 1997년 화석연료 사용을 규제하자는 교토의정서가 채택됐고, 마침내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파리협정)으로 협약당사국이 제각기 자발적으로 감축목표(NDC)를 설정해 온실가스를 줄이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한동안 논쟁이 이어졌고 때로는 약속이 무시되거나 무산되기 일쑤였다. 1992년 이래 약 30년이 흐른 2021년 들어 미국에서 바이든 정부가 출범해 파리협정에 복귀하면서 지구촌 여론과 상황은 급전했다. 다시 “파리협정의 정신으로 되돌아”(김수종 <뉴스1> 고문) 온 것이다. 2021년 4월 열린 기후정상회의를 비롯해 올해 들어 전개된 지구촌과 각국의 움직임은 생태위기와 생태전환이란 의제가 이제는 지구촌의 경제와 산업, 정치 등 전 분야에 구체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의제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복지국가는 인간이 직면하는 사회문제에 따른 위험, 즉 사회적 위험에 대응해 삶의 안전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다. 이에 복지국가는 탄생 이후 인간이 생애주기상 겪는 빈곤과 실업, 질병, 산업재해 등의 사회적 위험에 맞서 사회보험 등 사회보장제도를 구축해 대응해왔다. 생태위기와 생태전환은 오늘날 지구촌 복지국가가 맞서야 하는 메가톤급 위협이고 위험이자 과제다.
기후위기란 대형 위험을 논하기 이전부터 복지국가는 새로운 사회적 위험과 도전에 직면해 있었다. 복지국가가 맞닥뜨린 대표 도전 중 하나는 디지털화다. 디지털 기술 변화는 우리를 비롯한 대부분의 복지국가에서 직면한 사안으로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이후 가속화하면서 위협의 양태가 넓어지고 수위도 높아졌다. 디지털화의 핵심 문제는 가뜩이나 높은 노동시장의 불안정을 심화시킨다는 데 있다. 플랫폼 노동자의 출현 등 불안정한 노동자의 증가가 그것이다. 이들은 대체로 정규직 노동에 기반을 둔 공적 사회보험제도의 보호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필연적으로 불평등을 야기한다.
또 하나의 도전은 불안정한 저성장 세계경제 체제다. 복지국가는 전후 경제성장을 기반으로 황금기를 맞았다가 70년대 오일쇼크를 비롯해 일련의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 정책 영향으로 재편기를 겪는 등 부침을 겪으면서도 지속해서 발전해왔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지구촌 경제는 이름하여 저성장 시대라는 구조적 상황에 놓인다. 글로벌 가치사슬의 균열과 함께 세계화의 퇴조를 뜻하는 ‘슬로벌라이제이션’ 현상도 나타난다. 복지국가는 본질에서 자본주의란 대양 위에 구축된 함선이다. 자본주의란 바다가 출렁이면 함께 출렁이지 않을 수 없는 구조다. 더욱이 복지국가는 본디 경제성장을 기반으로 발전해왔는데, 저성장 구조는 복지국가의 지속가능성에 빨간불을 켜도록 한다.
문제는 복지국가의 재구조화
스웨덴의 유명 사회정책학자인 요하킴 팔메는 2019년 서울에서 열린 사회보장위원회 주최의 ‘사회보장의 미래’ 국제학술심포지엄에 참석해 오늘날 세계 각국이 겪는 사회보장의 도전을 두고 △불안정한 세계경제 △불안정한 세계 정치 △불평등 △저출산 고령화와 함께 기후위기를 거론했다. 이런 위협과 도전에 맞서 사회보장 시스템, 나아가 복지국가의 재구조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어렵사리 복지국가 문턱을 넘어선 한국 복지국가는 이런 대형 도전과 전대미문의 대형 사회적 위험인 생태위기에 맞서 어떤 변화를 모색할 것인가, 즉 ‘어떤 복지국가’로 ‘어떻게’ 재구조화해야 할 것인가? 문제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이다. 생태위기 등 복합 위기에 맞선 복지국가의 새로운 비전이며 그것이 가능한가의 문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