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중앙일보]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이 무고한 남성들까지 잠재적 가해자로 치부하는 건 어떻게 생각하세요?"-유튜버 '리나'
"여성도 안전한 사회에서 남자랑 똑같이 살 수 있게 관심을 가져달라는 얘기로 이해하고 있습니다"-직장인 A씨
지난 4월 재보선 이후 이른바 '이대남'(20대 남성), '이대녀'(20대 여성) 현상이 대두했다. 이들을 중심으로 한 젠더 갈등과 혐오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중앙일보 특별취재팀은 지난달 말 갈등의 당사자인 청년 남녀 1명씩을 한 자리에 모았다. 안티 페미니스트 성향의 여성 유튜버 '리나', 그리고 페미니즘을 5년째 공부하고 있다는 남성 직장인 A씨다. 남녀 간에 공격과 수비가 바뀐 셈이다. 이들은 한국의 페미니즘과 성별 혐오 현상 등에 대해 메신저로 2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다.
2회
'안티' 페미와 '남성' 페미의 톡 대화
리나 :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은 같은 여성도 페미니즘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격해요. 여성의 인권을 위한다고 하면서 도리어 혐오를 조장하고 있죠."
A씨 : "남성을 비하하는 표현이 등장하기 전에 온라인에 수많은 여성 혐오 표현이 있었어요. 여러 제도가 개선되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여성이 안전하게 살기 어려운 사회입니다."
수치로 나타난 젠더 혐오의 골, 2년 새 깊어져
지난 4·7재보궐 선거일에 청년 남녀 유권자들이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자치회관에 마련된 투표소로 향하고 있다. 뉴스1 둘의 뼈 있는 대화는 2021년 한국의 축소판이다. 오랜 남녀 갈등은 젠더 혐오로 변해간다. 남성은 여성에게, 여성은 남성에게 혐오표현을 서슴지 않는다. 때로는 같은 성별끼리 손가락질하기도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정치적 양극화, 청년 경제 상황 악화 등이 겹치면서 혐오의 골은 깊어진다.
특별취재팀이 지난 5월 여론조사 업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전국 19세 이상 1000명(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에게 평소 어떤 혐오표현을 보고 들었는지 물었다. 그 결과 최근 1년간 온·오프라인에서 혐오표현을 접한 적 있다고 밝힌 사람은 682명이었다. 이들 가운데 남성에 대한 혐오표현을 겪었다는 응답 비율('가끔·자주·매우 자주' 경험 합산)이 65.8%였다. 2019년 인권위가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땐 59.1%였다. 2년 새 6.7%포인트가 오른 것이다.
페미니스트에 대한 혐오 정서도 짙어졌다. 이들을 향한 혐오표현을 경험했다는 비율은 2019년 69.4%에서 올해 74%로 늘었다. 여성 혐오 경험도 같은 기간 68.7%에서 73.8%이 됐다. 장애인, 성 소수자, 지역 등과 관련한 혐오표현을 겪었다는 이가 줄거나 비슷한 것과 대조적이다.
혐오 표현의 부작용은 여성에게 더 크게 나타났다. 여성 10명 중 6명은 혐오표현을 겪은 뒤 '심리적으로 위축됐다'고 밝혔다. 남성은 해당 응답이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공포심을 느꼈다’ 응답 비율 차이도 17.3%포인트(여성 58.8%, 남성 41.5%)에 달했다.
누가 혐오표현 주도할까…20대가 제일 많았다
지난해 7~8월 온라인에 '여혐' 검색했을 때 나오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든 단어구름. 자료 중앙일보·사이람 젠더 혐오를 조장하는 이들은 누굴까. 특별취재팀이 실시한 대국민 인식 조사 결과에 실마리가 있다. 대상별로 차이는 있지만, 온라인 여론을 주도하는 '20대'가 혐오의 중심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관련 혐오표현을 썼다는 응답자는 35.8%였다. 국민 3명 중 1명꼴이다. 이들이 혐오를 내뱉은 대상(1~3순위 기준)은 페미니스트가 11.4%, 남성 6.4%, 여성 5.6% 등이었다. '코시국'(코로나 시국) 혐오표현 사용자들은 일반 남녀보다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이 높은 것으로 풀이된다.
페미니스트 혐오 사용자는 남성이 16.5%로 여성(6.9%)의 두 배 이상이었다. 세대별로는 20대(18.3%)와 40대(17.3%), 이념별로는 보수층(17.6%)에서 두드러졌다. 남성에 대한 혐오를 썼다는 비율은 남성(7.1%)이 여성(5.8%)보다 조금 더 높았다. 여성이 남성 혐오를 주도할 거란 사회 통념과는 배치되는 결과다. 또한 20대(10%)와 소득 하위층(11.8%), 진보층(7.9%)에서 남혐 사용이 많은 편이었다. 여혐은 남성(8.8%), 20~30대(각 8.3%), 영남(10.3%)에서 수치가 높게 나왔다. 다만 보수(7.4%)와 진보(7.9%)의 차이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지난 2~4월 온라인에 '남혐' 검색했을 때 나오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든 단어구름. 자료 중앙일보·사이람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남성이 적'이라는 건 페미니즘 본질이 아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소위 '페미'가 뭔지 정확히 모르고 혐오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그는 "2030 세대는 대개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 더 중요한 자기 정체성이 형성된다. 거기서 오랫동안 크다 보니 댓글의 언어가 본인의 언어가 됐고, 그건 욕이나 혐오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런 경향은 한국에서 특히 심한 편이다"고 설명했다.
'혐오 팬더믹' 한국을 삼키다 1회
젠더 혐오의 일상화 "내 지인이 썼을 수도"
온라인 혐오 표현 관련 일러스트. 사진 pixabay 젠더 혐오표현을 겪은 당사자들도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혐오가 일상화된다는데 공감했다. 내 주변에서 얼마든지 가해자가 나올 수 있는 사회, 이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세상이다. 그리고 혐오는 PC 모니터, 스마트폰 화면을 넘어 우울증·불안감 등 현실적인 피해를 가져다준다.
직장인 임모(27)씨는 최근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 페이스북 게시물에 댓글을 달았다. 그런데 모르는 계정으로부터 남혐 표현이 담긴 메시지를 받았다. '한남'(남성 비하 표현) 같은 조롱은 점잖은 수준. 비속어가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여자친구 욕도 있었다. 임씨는 "SNS 메시지를 직접 받다 보니 혐오표현을 쓰는 사람이 내 지인 중 한 사람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젠더 혐오가 일부 극단적인 이들의 행동만은 아닌 것 같아 불안해졌다"고 말했다.
대학생 이모(21)씨는 대학생 익명 커뮤니티에서 20대 여성 문제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그 직후 자신을 겨냥한 여혐 댓글이 쏟아졌다고 한다. 혐오의 늪에 빠져들면서 우울감과 불면증이 찾아왔고, 결국 병원을 찾아야 했다. 그는 "요즘엔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만 보면 내용과 상관없이 비난하러 달려가는 경주마들이 있는 것 같다. 점점 생산적인 젠더 논의가 어려워져 무력감이 든다"고 밝혔다.
미디어·정치권 등이 별 고민 없이 젠더 혐오를 다루는 분위기도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페미니즘 동아리 활동 중 여혐 댓글을 접했다는 30대 여성 B씨는 "얼마 전 '메갈리아 집게 손동작' 사건 같은 이슈가 불거졌을 때 언론이 검증 없이 보도하면서 논란을 키웠다. 그러자 유튜버들은 더 자극적인 내용을 양산하면서 혐오를 부추겼다"고 꼬집었다.
※본 기획물은 한국언론학회-SNU 팩트체크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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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를 집어삼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더믹은 우울(블루)과 분노(레드)를 동시에 가져왔다. 특히 두드러진 게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분노와 공격이다. 서구에선 아시아인 등에 대한 증오범죄와 혐오발언(헤이트 스피치)이 이어진다. 국내서도 온ㆍ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혐오 정서가 난무한다. 여혐ㆍ남혐 논란, 중국동포(조선족)와 성소수자 비난 등이 대표적이다.
'성별, 장애, 출신지역, 인종 등을 이유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 편견을 조장하고 멸시ㆍ모욕ㆍ위협을 하거나 폭력을 선동하는 행위'. 혐오표현의 정의(2019년 인권위 보고서 참조)다. 이러한 혐오표현은 한국 사회에 뿌리깊게 자리잡아왔다. 그리고 코로나19를 계기로 분출하는 모양새다. 혐오는 때론 내 이웃을 향하고, 종종 나 자신을 겨누기도 한다. 팬더믹 1년 반, 중앙일보 특별취재팀이 우리 안의 혐오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어디로 가야할 지를 살펴봤다. 혐오표현이 근거로 삼는 명제들이 맞는지도 '팩트체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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