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에 인구와 기업이 몰리고 지방은 소멸하는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이는 경제논리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일일까요. 정부 정책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요. 참여정부 이후 역대 정부는 국가균형발전을 내세웠고 정부 예산에는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균형발전예산)가 있습니다. 해마다 약 10조원이 ‘균형발전’ 명분으로 쓰입니다. 꽤 많은 돈이 들어가는데 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는 좁혀지지 않을까요. 국민일보 이슈&탐사2팀은 정부 균형발전예산에 관한 심층분석 기사를 5회 시리즈로 보도합니다. 지역공동체일자리사업 참여자들이 지난 8일 경기도 화성 병점행정복지센터 옥상에서 상추와 오이, 토마토 등을 심은 텃밭을 관리하고 있다. 이들은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5시간 동안 근무하고 시급 8720원(최저 임금)을 받는다. 화성=윤성호 기자 전남 강진군 칠량면에는 성인이 2500원에 이용할 수 있는 목욕탕이 있다. 2010년 강진군이 주민 건강과 복지 증진 차원에서 생활체육센터와 함께 지은 곳이다. 여느 목욕탕처럼 이곳도 청소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곳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일하는 운영도우미 A씨는 일주일에 4일 출근해 하루 3시간씩 청소를 한다. 목욕탕이 주1회(손님이 적은 농번기)나 2회만 운영을 하므로 문을 닫는 날 A씨는 건물 다른 곳을 청소한다. 그는 최저 시급인 시간당 8720원을 받고 주휴 수당을 추가로 받는다. A씨가 받는 돈은 균형발전예산에서 지급된다. ‘지역 간 불균형을 해소하고 지역 특성에 맞는 자립적 발전’을 하라는 취지의 예산이다. 연간 약 10조원인 균형발전예산의 세입원은 주세(酒稅)와 개발제한구역 보전 부담금, 광역교통시설부담금 등이다. 어젯밤 누군가 지불한 술값 중 일부가 내년 지방 목욕탕 청소부 인건비로 쓰인다고 할 수 있다. 균형발전예산이 창출하는 일자리 가운데 일부는 아르바이트에 가깝다. 강진군은 지난 2월 ‘지역공동체일자리 사업’으로 30여명을 선발했다. 이들은 도서관 운영도우미, 가로화단 관리 등을 한다. A씨가 하는 목욕탕 청소도 이 일자리 중 하나다. 강진군 세출예산 사업명세서에 따르면 군은 이 사업에 3억2400여만원을 사용한다. 절반가량인 1억6200여만원은 균형발전예산이다. 취약계층 겨냥한 일자리 국민일보 취재팀은 민간연구소인 나라살림연구소와 함께 균형발전특별회계의 2008~2021년 지방자치단체별·부처별 예산 현황을 파악하고 국가균형발전종합정보시스템 ‘나비스(NABIS)’의 균형발전예산 사업 내역을 분석했다. 올해(2021년도) 균형발전예산 10조3256억원 가운데 일자리 창출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예산은 1조7314억원이다.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6.7%다. 나비스 균형발전예산 사업 목록 가운데 ‘일자리’가 목적인 사업을 모은 결과다. 이 가운데 743억원이 들어가는 지역공동체일자리는 행정안전부 지침에 따라 각 지방자치단체가 균형발전예산으로 편성하는 직접 일자리 사업이다. 지자체는 이 사업에서 주로 지역 내 취업 취약계층을 고용한다. 생계를 돕는 것이 목적이어서 단순한 일자리가 많다. 예컨대 울산 동구는 올해 AR콘텐츠 체험존 운영을 돕거나 캠핑장 시설물을 관리하는 일자리를 마련했다. 부산 서구는 ‘아미문화비석마을 일원 청결 유지’ 일자리 계획을 세웠다. 전남 고흥군은 공원 화단 잡초를 제거하거나 나무를 정비하는 일을 맡기기 위해 상반기 30여명을 선발했다. 고흥군 관계자는 “청년층보다 생계유지나 재취업이 어려운 50, 60대가 주로 참여한다”고 말했다. 행안부의 지역공동체일자리 사업 종합지침에 따르면 참여 대상은 ‘기준중위소득 65% 이하이면서 재산 3억원 미만인 가구의 구성원’이다. 처음부터 취업취약계층을 겨냥한 것이지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제공하려는 목적은 아니라는 얘기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지난해 도입된 지역방역일자리도 이 사업의 일부다. 시·군·구 청사의 출입자 발열 체크를 돕거나 손 소독·방역 수칙을 안내하는 일이다. 행안부는 올해 전국에서 8620명에게 방역일자리를 제공할 예정이다. 예산은 254억원(지역공동체일자리 743억원의 일부)이 책정돼 있다. 지역공동체일자리는 지역에서 반응이 좋다. 비교적 단순한 일을 하고 최저 시급을 받을 수 있어서다. 고흥군 관계자는 “읍·면 주민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사업이다. 관광 시설을 정비할 일손이 부족해 읍·면사무소에서는 더 많이 뽑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부산 사하구는 상반기에 지역공동체일자리 사업으로 36명을 선발했는데 916명이 신청서를 냈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지역 간 균형발전’이라는 목적에 부합하는지는 의문이다. 지난해 국회에서는 균형발전예산으로 단순·단기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회계의 목적에 맞느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정성희 행정안전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8월 24일 행안위 회의에서 “대부분 꽃길 조성이나 도로 정비 등 환경정비사업”이라며 “지자체의 공공근로사업이나 희망근로사업과 차별성이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박완수 국민의힘 의원은 11월 5일 행안위 회의에서 “균형발전특별회계 예산은 지역특화사업이나 광역협력권사업만 하도록 돼 있다. (지역방역일자리사업이) 일반회계 사업이지 어떻게 균특회계 사업인가”라고 말했다. ‘예산 퍼주기’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은 같은 달 19일 열린 예산결산특별소위원회 회의에서 “방역일자리가 무슨 일자리인지 그림이 와 닿지 않는다”며 “지역에 가면 ‘돈을 이렇게 써도 되냐’ ‘이렇게 가서 조금만 있으면 돈 주더라’며 걱정하거나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세금이) 자기 돈 같으면 이렇게 쓰겠느냐”고 했다. “청년층 붙잡기 힘듭니다” 균형발전예산 사업 가운데는 더 큰 규모의 일자리 사업도 있다. 보건복지부의 ‘지역자율형 사회서비스 투자사업’(3253억원)과 중소벤처기업부의 ‘지역특화산업육성+(R&D) 사업’(1260억원) 등이다. 정부는 이런 사업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지역 균형발전 목적에 부합하면서 지속가능한 일자리인지는 따져볼 점이 많다. 먼저 복지부의 지역자율형 사회서비스 투자사업은 ‘균형발전’보다 ‘복지’에 방점이 찍혀 있다. 각 지자체가 지역 특성에 맞는 사회서비스를 기획하고 전자바우처를 통해 집행하는 방식인데, 아동·청소년 대상 미술·심리상담 프로그램, 노인·장애인 돌봄서비스 등이 이에 포함된다. 산모·신생아 건강관리 지원, 가사·간병 방문관리 지원 사업도 균형발전예산으로 진행되고 있다. 일반 사회복지 사업을 균형발전예산으로 집행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복지부도 알고 있다. 2019년 8월 2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회의에서 박종희 수석전문위원은 “지역개발과 사회복지라는 이질적 분야의 사업을 함께 (균형발전예산에) 편성해서 지역개발사업을 우선순위에 두면 복지사업이 소홀하게 다뤄질 가능성이 있다”며 “지역자율형 사회서비스 투자사업을 일반회계로 이관하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요구했다. 김강립 당시 보건복지부 차관은 “전국적으로 균등한 혜택이 필요한 산모·신생아 건강관리나 가사·간병 방문지원 사업을 일반회계로 전환하는 방안을 기재부와 협의하도록 하겠다”며 제도 개선 의사를 밝혔지만 바뀌지 않았다. 한 청년 구직자가 지난해 11월 18일 경기도 수원시청에서 열린 ‘2020년 수원시 온·오프라인 채용박람회’에서 채용 안내 게시판을 보고 있다. 수원=윤성호 기자 중기부의 지역특화산업육성+(R&D) 사업은 지역스타기업 육성을 지원한다. 지방 우수 중소기업을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키우는 게 목표인데 지원액 2억원당 1명을 신규채용하는 방식으로 일자리 창출을 유도한다. 그렇지만 새로 채용한 사람에 대해서는 ‘신규사업 참여’와 ‘6개월 이상 고용’이라는 단서만 붙어 있다. 해당 일자리가 장기간 유지되는지는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지금의 균형발전예산 일자리 사업으로는 양질의 일자리 제공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특히 재정 규모가 작고 행정력이 낮은 시·군·구의 고민이 크다. 전남 보성군 관계자는 “농어촌에서 (균형발전 사업으로) 청년층을 붙잡기가 여건상 힘들다. 도시 지역이나 광역시는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농어촌 지역에서는 사실 쉽지 않다”고 했다. 이상호 한국고용정보원 지역일자리팀 부연구위원은 “정부 부처 주도로 사업을 하다 보니 80~90%는 기존에 하던 것들을 그냥 이름만 (균형발전으로) 바꾸고, 10%는 포장만 새로 씌우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정치인과 엘리트들이 대도시에 살다 보니 균형발전 정책이 자꾸 후순위로 밀리는데, 지금이 일자리를 매개로 지역에서 혁신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며 “(균형발전을) 대단위로 준비하지 않으면 5년 후에 유탄을 크게 맞을 것”이라고 했다. 권기석 양민철 방극렬 권민지 기자 extreme@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