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백리와 측천무후의 묘비에 글자가 없는 이유
오가는 사람들의 입이 바로 비석이로다. 중국선종의 시조인 달마대사는 파격적인 인물이었다. 삶 자체가 기존 사상의 틀로는 설명이 어려운 격(格)을 뛰어넘는 대장부(大丈夫)였기 때문이다. 그의 평가에 대하여 이런저런 말들이 분분하자 강소성(江蘇省) 진주(眞州) 장로산(長蘆山)에 머물고 있던 분(賁)선사는 모든 ‘썰’을 일축하는 한 마디 게송을 남겼다. 하긴 고착된 견해를 가진 인물들이 어찌 달마대사에 대해 감히 이러쿵 저러쿵하며 입을 댈 ì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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