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분기까지 한인은행의 예금고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남가주 소재 6개 한인은행의 1분기 예금고는 전분기 및 전년동기 대비 각각 3%와 16% 증가한 248억달러다. 문제는 예금고 증가가 소비자의 의식 전환에 따른 저축 증가가 아닌 정부의 지원금, 급여보호 프로그램(PPP), 경제피해 재난대출(EIDL), 그리고 SBA 융자 증가 등에 따라 자연스럽게 입금된 금액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변수는 1% 언저리인 예금 이자 대신 위험은 크지만 운만 따르면 수백배의 이익을 거두는 가상화폐나 투기성 주식투자에 자금이 몰리는 현상이다.게임스탑과 도지코인 열풍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상장 한인은행의 고위 간부는 “한인은행 대출력의 근간은 예금인데 만일 이 예금이 줄어들어 예대율이 치솟으면 큰 문제가 될 수 있어 대안이 필요하다”라며 “이와는 별개로 아직 한인들의 경우 자산관리하면 부동산 매입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차세대 주요 고객이 될 청년층은 다르다. 한인은행들도 단순 부동산이나 리테일 비즈니스 대출이 아닌 전문적인 고객 자산 관리에 집중해야 한다. 한 고객이 한 은행에서 대출, 크레딧 카드, 자산관리, 그리고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보험 가입 등 모든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고 지적했다. ●계약직 늘고 업무 전환 불가피 최근 한인은행 중 일부는 신규 직원에 대한 디지털 교육 의무화를 검토하고 있다. 6개월~1년에 걸쳐 진행될 디지털 교육과정에는 ▶데이터베이스 ▶알고리즘 ▶소프트웨어 공학 ▶앱 개발 및 관리 ▶인공지능 관리 ▶금융 전산 ▶각 대학의 컴퓨터 공학과와 핀테크 기업 등 디지털 금융 선도 기관과의 협업 등이 포함돼 있다. 은행원 교육이 아닌 컴퓨터 공학(?) 전공자의 수업과 같은 이 과정은 앞으로 컴퓨터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 금융 전문인력이 은행의 핵심인력이 될 것이라는 점을 전제로 이를 위해 기초적인 금융 지식 및 업무 능력을 갖춘 직원들에 대한 집중적인 특화 교육을 통해 기존의 은행업과 디지털 금융 역량을 모두 갖춘 ‘올 어라운드 플레이어(All around player)’를 양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또 기존 직원들도 구조재조정에 따른 해고보다는 재교육을 통한 업무 재배정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인공지능 활용이 본격화되면 직원에 대한 수요가 1/10 수준으로 떨어지게 되는데 이를 신규직원 채용의 비정기화와 기존 직원의 재배치(재교육을 통한)을 통해 해결한다는 것이다. 기존 직원에 대한 해고 보다 업무 재배치가 더 낮은 비용이 발생하고 효율도 높다는 연구 결과도 이러한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또 경제 불확실성을 고려해 일부 업무에 대한 계약직 비중을 늘리는 대신 성과급을 올려 고용 안정성에 대한 불안을 잠재우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일부에서는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안에 전 은행 직원의 20% 이상이 계약직으로 채워질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코로나 19이후 재구성된 사무공간의 모습. 직원간 자리를 분리해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폐쇄적이지 않도록 설계됐다. ●재택근무및 자동화 전략 컨설팅 업체 매킨지가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미국 대기업 임원 중 70%가 코로나 19 이후 자동화 도입이 가속화했다고 답했다. 재택근무 비중이 클수록 자동화에 대한 선호도도 높았다. 재택근무 비율이 높은 기업은 80%가 자동화가 증가했다고 답했지만 일부 직원만 재택근무로 돌린 기업은 자동화에 대한 선호도가 51%로 평균치를 밑돌았다. 한인은행들은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안에 50% 이상의 재택 근무 혹은 완전한 순환 근무 시스템이 자리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장 출근이 필수적이지 않은 부서의 경우 불가피한 회의 등을 제외하면 아예 재택으로 전환하고 그외 부서들도 상황에 따라 1주일에 2회나 3회 정도의 순환 근무(요일 이나 부서별로 번갈아 출근하는 것)를 실시한다는 것이다. 자동화의 경우 모기지 등을 포함한 대출 서류 심사와 예금 계좌 개설, 거래 명세 조회, 송금 및 계좌 간 이체 그리고 은행 앱을 통한 대금 결제 등의 업무에 도입될 예정이다. 자동화의 또 다른 핵심은 최신형 ATM 기기다. 은행권에서는 코로나 19이후 그 중요성이 강조된 언택트(비대면) 이후 ATM 기기의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며 ATM의 기능이 개선되면 은행 창구 업무의 90% 정도를 처리할 수 있다고 예상한다. 아직 미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한국에서는 이른바 STM(Smart Teller Machine)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STM은 화상인증(신분증 복사+얼굴 사진 촬영, 음성녹음)과 바이오 인증까지 가능해 기본 기능인 현금 입출금을 시작으로 거래 내역 확인, 계좌 개설 및 이체, 카드 재발급, 각종 비용 납부 그리고 영업시간 중 직원과의 화상컨퍼런스를 통한 복합 업무 진행 등의 기능을 처리할 수 있다. 비용절감에 고심 중인 은행에서 ATM이 중요한 것은 지점 통폐합 및 폐쇄, 인건비 절감, 그리고 사무 공간 재편 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은행들은 지점 1개당 연간 100만달러 이상의 운영비가 지출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최고 사양의 ATM이 지점 업무를 대체하게 되면 이 기기 운영비를 제외해도 연간 수백만 달러가 절감되며 그간 한인들이 다수 거주하고 있지만 지점 설치의 수익성은 없던 지역에도 ATM 설치만으로 고객 확보가 가능해진다. ATM으로 인해 오프라인 지점의 중요성이 낮아지면 은행이 하나의 건물(혹은 소유 중인)을 직접 구입해 주요 부서를 집중하거나 임대 비용이 낮은 곳으로 각 부서를 분산 배치할 수 있으며 나아가 자동화에 더 많은 자본을 투입할 수 있는 여력이 생겨 비용 지출은 줄이면서도 고용 유연성을 개선할 수 있다. 부동산 자산의 추가 정리를 통해 현금 유동성을 확보할 수도 있다.출퇴근 의무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고용 유연성이 개선돼 더욱 경쟁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은행에 대한 인식 전환 코로나 19이후 고객과 은행의 관계도 많이 달라졌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은행 지점과의 관계가 달라졌다고 할 수 있다. 오프라인 지점의 중요성은 매년 감소하고 있었지만 코로나 19는 이를 가속화 시켰다.고객이 지점을 꼭 가야 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면 실제 몇 가지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보면 ATM에서 현금 인출을 위해서 (가장 흔한 경우), 웹페이지(앱)이나 전화로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문의하기 위해, 그리고 새 계좌를 오픈할 때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 세가지 모두 예전에 비해 너무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스마트 폰 등을 통한 결제(온라인 포함) 등이 활성화 되면서 현금 보유의 중요성이 낮아졌고 지점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온라인이나 전화로 거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금융기관별로 차이가 있지만 온라인을 통한 계좌 개설도 점차 확대되고 있으며 계좌를 열고 난 후에는 바로 온라인으로 전환할 수 있어 지점을 다시 찾을 이유가 없다. 지점을 가지 않고도 사람과 직접 대화화지 않고도 금융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신규 계좌를 열 때 문제가 되는(지점 방문의 이유가 되는) 신분 인증의 경우도 점차 디지털 ID가 정착되면 해결된다. 최근에는 자산 22억달러로 21만 6000명 이상의 고객을 확보 중인 유타 커뮤니티 크레딧 유니언(이하 UCCU)이 최근 유타주 공공안전부서 및 DMV의 라이센스 발행 부서 등과 손잡고 모바일 ID에 대한 본격적인 테스트에 들어갔다. ●은행의 지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은행들은 지점의 총 수는 줄이지만 고객들에게 새로운 은행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대안으로 연구하고 있다. 지점이 여전히 계좌개설의 주된 통로일 뿐 아니라 온라인 보다 은행에 대한 만족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실제 각 은행들과 리서치 업체의 연구 결과 계좌 개설 시 경험이 은행의 전반적인 인상을 좌우하고 여기서 형성된 경험은 온라인 보다 더 길게 이어진다는 분석이 있다.. 은행들은 지점에서 금융서비스 외에 비금융 서비스를 추가하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 비금융 서비스와 협업으로 유명한 곳은 스페인의 카이샤뱅크다. 2019년 발렌시아와 바르셀로나에 새로운 개념을 도입한 지점을 오픈했고 큰 성과를 거뒀다. 지점 안에 자연경관을 전시하는 대형스크린을 설치하고 향초와 음악을 결합해 마치 고객들이 식물원에서 금융서비스를 이용하는 경험을 제공했다. 유명 쉐프들의 음식과 특정 주제에 대한 토론과 강의 프로그램도 고객들의 발길을 카이샤뱅크로 이끄는 동력이 됐다. 미국 지점 상당수에 대한 정리 계획을 밝힌 HSBC도 맨해튼 지점 등에 설치된 로봇 ‘페퍼’를 통해 고객이 함께 찍은 사진을 소셜 미디어에 올리도록 했더니 지난 수년간 수 만명 이상의 고객을 통해 방문객 5배 증가, 해당 지점 신규사업에 대한 성과(Performance) 60% 이상 향상, 그리고 고객 경험 긍정도 99%를 기록했다. 한인은행들도 전체 지점은 줄이지만 각 지역별 거점 지점을 마련해 1층(혹은 인접 공간)에 카페나 전시관을, 2층에 지점을 운영하는 방안 등을 고려해볼 수 있다. 예를 들면 고객들은 2층에서 은행 업무를 보기 전에 1층에서 커피나 전시물을 보거나 책을 읽는 등 문화경험을 즐길 수 있고 미국 시민권 강의 등의 문화 프로그램도 수강할 수 있다. 특화 지점을 꾸며 방문 고객을 늘리고 이들이 은행의 지점에 머무는 시간을 늘림으로써 은행 상품과 서비스를 자연스럽게 더 많이 사용하는 쪽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한인은행에서는 오픈뱅크가 지난 2016년 LA 웨스턴 지점에서 사랑의 무료 아이캠프(비전케어 주최)와 함께 시행했던 ‘학생 아트 컨테스트 시상식’ 과 당선작 전시회가 좋은 사례로 꼽힌다. 최한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