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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켄터키주 할란카운티에서 일어난 브룩사이트 탄광 파업을 소재로 한 뮤지컬 '1976 할란카운티'. 1976년에 나온 다큐멘터리 '할란카운티 USA'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주)이터널저니
최근 국내 연극계에서는 노동연극이 자주 무대에 오르고 있다. 동시대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현재 한국 사회의 주요 이슈 가운데 하나인 노동 문제를 다루는 작품이 많아진 것이다. 이에 비해 뮤지컬계에서는 노동을 소재로 한 창작뮤지컬을 찾아보기 어렵다. 뮤지컬이 기본적으로 판타지성 강한 장르여서 지극히 현실적인 노동 문제를 다루기가 쉽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래서 뮤지컬로는 드물게 노동 문제를 다룬 ‘1976 할란카운티’의 등장은 반갑다. 게다가 이 작품이 서울에서 제작된 후 지방에서 공연되는 여느 작품과 달리 부산에서 현지 예술가와 제작사, 재단의 협업으로 제작된 후 서울로 올라왔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1976 할란카운티’는 극작과 연출을 맡은 유병은이 광화문 촛불 시위 때 민중가요 ‘Which side are you on?(당신은 어느 편인가요?)’를 듣고 할란카운티를 처음 알게 됐다고 밝혔다. 이 노래는 1930년대 ‘유혈의 할란(Bloody Harlan)’ 혹은 ‘할란카운티 전쟁(Harlan county war)’라고 불릴 만큼 노동자들의 투쟁이 격렬했던 시기에 만들어졌다. 이후 할란카운티에 대해 좀 더 알아보던 유병은은 바바라 코플의 다큐멘터리 영화 ‘할란카운티 USA’를 접하고 감동받아 뮤지컬 ‘1976 할란카운티’를 만들게 됐다.
1973~74년 브룩사이드 파업 다룬 ‘할란카운티 USA’
1976년에 나온 다큐멘터리 ‘할란카운티 USA’는 1973년 할란카운티 브룩사이드 탄광에서 일하는 광부 조합원과 그 가족들이 열악한 노동조건 및 주거환경을 바꾸기 위해 듀크 에너지 그룹의 자회사 이스트오버 석탄 회사와 싸우는 과정을 담았다. 코플은 당초 전미광부노조(United Mine Workers of America) 위원장인 토니 보일을 몰아내려는 조합원들의 이야기를 담으려고 했다.
바바라 코플의 다큐멘터리 영화 ‘할란카운티 USA’의 장면들. 1976년 개봉된 이 작품은 이듬해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1960년 노조 부위원장을 거쳐 1963년 노조 위원장이 된 보일은 광부들보다 광산회사를 위해 일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도 장기집권하던 보일은 1969년 선거에서 조합원들의 지지가 높던 조셉 야블론스키와 맞붙었는데, 최악의 부정선거라는 비판 속에서도 또다시 승리를 거머쥐었다. 야블론스키는 보일의 승리를 인정했지만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조사를 요구했다. 그런데, 1969년 12월 31일 야블론스키 부부와 딸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선거 조사가 급물살을 타게 됐다. 1972년 부정으로 최종 결론이 났는데, 한 해 전 노조 기금 횡령으로 이미 기소됐던 보일은 야블론스키 청부살인 교사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코플은 보일이 투옥된 후 새롭게 출발한 전미광부노조가 관심을 기울이던 브룩사이드 파업으로 다큐멘터리 테마를 바꿨다. 1973년 6월 시작된 파업은 브룩사이드 광부들이 기존에 가입했던 남부노동조합(Southern Labor Union)을 탈퇴하고 전미광부노조 가입하기로 결정한 데서 기인한다. 당시 남부노동조합은 광산회사의 편을 들어 광부들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는 데 적극적이지 않았다. 이스트오버 석탄 회사는 브룩사이드에 전미광부노조의 지회를 설립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새 계약서의 서명을 거부하는 것은 물론이고 파업 금지 조항을 포함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광부들은 13개월간의 파업을 시작했고, 사측이 대체인력을 데려오면서 양측간 유혈 충돌이 일어나기도 했다. 특히 사측과 지역 경찰은 파업 광부들에게 폭행을 넘어 총격을 가하기도 했다. 결국, 13개월의 지난한 투쟁은 20대의 젊은 광부가 몸싸움 도중 총을 맞고 죽은 것이 계기가 되어 노사의 타협을 끌어내게 됐다. 브룩사이드에서 광부들과 살며 파업에 근접해서 다룬 코플의 다큐멘터리는 1976년 개봉 즉시 대단한 호평을 받았으며 이듬해 아카데미상까지 획득했다.
브룩사이드 파업 당시 광부들의 아내, 어머니, 딸, 자매 등 여성들은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1970년대 켄터키주에 흑인노예제 존속?
뮤지컬 ‘1976 할란카운티’는 브룩사이드 파업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되 상당한 각색을 거쳤다. 무대는 미국에 노예제도가 폐지된 지 100여 년이 지난 1976년. 백인 청년 라일리와 부모를 대신해 라일리를 키운 흑인 노예 다니엘이 노예 사냥꾼으로부터 도망쳐 북부 뉴욕으로 가다가 할란카운티 광부노조 위원장 모리슨을 만나면서 스토리가 전개된다. 할란카운티의 광부들은 이스트오버 석탄 회사의 횡포에 맞서 모리슨과 부위원장 존을 중심으로 파업을 하고 있었다. 모리슨은 상급노조인 전미광부노조에 가입해 사측을 압박할 계획을 세우는데, 이를 눈치챈 사측은 모리슨을 암살하고 가입서를 빼앗으려 한다. 다니엘과 라일리는 기차역에서 자신들을 도와준 모리슨에게 가입서를 존에게 전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할란카운티에 오게 된다. 이후 광부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존, 존의 아내로 남편을 위해 노조 가입서를 사측에 넘기는 나탈리, 모리슨의 딸이자 유일한 여성광부인 엘레나, 광부 출신으로 사측에 선 배질, 소매치기인 소년 광부 올리버 등 여러 인물의 이야기가 날실과 씨실처럼 엮이며 할란카운티의 역사적 현장으로 관객을 이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무엇보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흑인 노예의 등장이다. 켄터키주가 1976년 노예제 폐지를 담은 수정헌법 13조를 비준했다고 해서 당시에도 노예제가 유지됐던 것은 아니다. 브룩사이드 파업은 1973년 시작돼 1974년 끝났지만, 제목을 ‘1976 할란카운티’로 정한 것은 켄터키주의 수정헌법 13조 비준과 연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남북전쟁에서 북부가 승리한 1865년 수정헌법 13조가 선포된 후 켄터키주 등 몇몇 주가 바로 비준하지 않았지만 노예제는 사실상 폐지됐다. 대신 1896년 연방대법원은 인종 간 분리하되 동등한 기회를 주면 합헌이라고 보는 수정헌법 14조를 합헌으로 판결함으로써 인종 차별을 용인했다. 이후 20세기 중반 흑인들은 부당한 차별에 항의하는 민권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1954년 대법원이 일부 주의 공립학교 흑백 분리 정책에 위헌결정을 내린 것을 계기로 민권운동은 속도가 붙었다. 그리고 1964년 흑인 차별을 금지한 민권법에 이어 1965년 흑인의 투표권을 보호하는 투표권법 제정으로 흑백 차별법들은 사라지게 됐다. 따라서 극중 배경인 1976년에 흑인 노예를 물건처럼 주고받고 채찍으로 때리는 설정은 성립될 수 없다.
뮤지컬 '1976 할란카운티' 속 흑인 노예 설정이나 캐릭터 묘사는 시대에 맞지 않거나 인종적 편견을 드러낸다. (주)이터널저니
흑인 노예 설정과 맞물려 백인 라일리와 흑인 다니엘의 캐릭터는 1852년에 나온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 속 관대한 백인과 순종적인 흑인이라는 전근대적인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말을 못 하는 언어 장애인 다니엘은 착하고 수동적인 인물로 라일리를 위해 평생 희생하는 캐릭터다. 2019년 초연 당시엔 얼굴을 검게 칠했지만 근래 ‘블랙 페이스’ 논란을 의식한 듯 이번 재연에선 검게 칠하지 않았다. 그러나 블랙 페이스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인종적 편견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니엘을 보호하기 위해 애쓰는 라일리의 경우에도 “뉴욕에는 흰 눈이 내린대. 아저씨도 하얗게 보일 거야”라는 노랫말에서 보듯 백인의 우월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각색하며 인종과 젠더 문제는 보수적
그리고 극 중 브룩사이드 광산에 백인 광부만 있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당시 흑인 광부도 상당히 거주하고 있었다. 사실 흑백차별의 영향으로 흑인 광부가 백인 광부보다 임금이 저렴했기 때문에 당시 광산 회사들은 흑인 광부를 선호했다. 여기에 할란 카운티가 당시 다른 광산보다는 학교, 병원, 상점이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흑인 광부와 그 가족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다큐멘터리 ‘할란카운티 USA’에도 흑인 광부의 등장 장면들이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에는 코플이 다큐멘터리에서 흑인 광부와 그 가족을 다루지 않은 것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흑인 문제에 이어 극 중 민폐를 끼치는 여성 캐릭터들의 묘사도 아쉬운 부분이다. 유일한 여성광부인 엘레나는 아파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고, 나탈리는 존을 사랑해서라지만 노조 가입서를 사측에 넘겨 사태를 꼬이게 만든다. 또 올리버가 소매치기와 밀고 등 나쁜 짓을 하는 것은 아픈 동생 엠버 때문이다. 젠더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는 요즘 남성 중심의 편향된 서사는 불편하게 느껴진다.
뮤지컬 '1976 할란카운티'에서 여성의 역할은 수동적이다. 실제 브룩사이드 파업에서 여성의 역할이 컸던 것과 대조된다. (주)이터널저니
게다가 다큐멘터리 ‘할란카운티 USA’는 물론이고 다른 연구자료에서도 브룩사이드 파업의 성공에는 여성들의 역할이 컸다고 나온다. 파업 당시 광부들의 아내, 어머니, 자매 그리고 딸들은 수동적이지 않았다. 이들은 여성클럽을 만든 뒤 자발적으로 탄광 앞에서 피켓시위를 벌였다. 또한, 사측 관계자가 데려온 대체 인력이 탄광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차에 몸을 던지는가 하면 경찰관과 육탄전을 벌이다 얻어맞고 구치소에 끌려가기도 했다. 일부는 총에 맞아 부상을 당하기까지 했다. 일부는 본사가 있는 노스캐롤라이나주까지 가서 시위를 벌이며 파업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높였다. 당시 언론 기사를 보면 노동 현장에서 여성들의 시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여성들이 이토록 파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은 광부노조 역사상 처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초연에선 직접적으로 묘사됐다가 재연에서 간접적으로 바뀌긴 했지만 엘레나의 성상납은 더더욱 불편하다.
유일한 여성광부 엘레나의 묘사 역시 아쉽다. 미국에서 여성광부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73년 12월이다. 켄터키주 레처카운티에 있는 베스-엘크혼 석탄 탄광에서 2명의 여성광부가 고용된 것이 미국 전역의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당시 할란카운티 탄광에 여성 광부가 있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여성 광부가 처음 등장한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가능성은 충분하다. 다만 첫 여성광부의 등장 이후 탄광에서 일하는 여성광부들이 꾸준히 증가한 것을 생각할 때 엘레나만 극 중에서 진폐증 환자로 묘사되는 게 씁쓸하다. 남편을 잃고 아이들을 부양하기 위해 탄광을 택한 첫 여성광부 2명은 “탄광에 여자가 들어가면 운이 나쁘다”는 등의 미신과 남성광부들의 따돌림 속에서 꿋꿋하게 버텨 오래지 않아 동료로 받아들여지게 됐다고 한다.
미국에서 첫 여성광부 2명이 나왔다는 내용의 1973년 12월 뉴욕타임스 기사.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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