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에서 정부군과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 간 교전을 피해 삶의 터전을 떠난 주민들이 지난 8일(현지시간) 헤라트주의 한 임시 난민시설에 머물고 있다. 미군이 철수한 아프가니스탄에선 탈레반이 세력을 크게 확장해 정부군과의 내전이 격화됐고, 난민 수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EPA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미 역사상 가장 긴 20년간의 전쟁에서 손을 떼자 아프가니스탄은 죽음의 땅으로 바뀌고 있다. 미군 철군 계획 발표 이후 정부군과 무장반군 탈레반의 내전이 격화하면서 사상자 규모는 매달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으며 수십만명의 난민이 발생하고 있다. 강대국들은 미국이 빠진 아프간의 주도권을 두고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내전 확대에 사상자 폭증 지난 5월 초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은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군과 함께 시작된 탈레반군의 공격과 관련, “미군 철수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작은 괴롭힘 정도”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상황으로 볼 때 미국의 예상은 지나친 낙관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이 미군 철수 계획을 발표한 지난 4월 이후 사상자는 폭증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가 매달 집계하는 ‘아프가니스탄 전쟁 사상자 보고’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200명대에 머물렀던 정부군(친정부 민병대 포함) 사망자 수는 철군 계획이 발표된 4월에 300명, 철군이 시작된 5월 400명을 돌파하더니 지난달에는 2018년 9월 집계 이래 사상 최대치인 703명을 기록했다. 민간인 사망자 수도 급격히 증가했다. 지난 4월부터 지난달까지 민간인 사망자 수는 557명으로, 1월부터 3월까지 사망자 수의 2배 이상이다. 유엔난민기구(UNHCR)가 이미 올 1분기 민간인 사상자 수도 전년 동기와 비교해 29% 증가했다고 밝힌 만큼 2분기 민간인 피해는 더욱 심각한 수준일 것으로 예측된다. “살고 싶다”…생명 위협 속 망명 러시 아프가니스탄 주민들은 정든 고향을 떠나고 있다. AP통신은 아프가니스탄 난민송환부를 인용해 지난 15일간 탈레반의 진격으로 5600명 이상의 가족이 집을 떠났다고 보도했다. UNHCR은 지난 1월 이후 약 27만명의 난민이 새로 발생했으며 총 난민 수는 350만명 이상으로 집계했다. UNHCR은 “난민들은 치안 상황, 탈레반의 강탈, 폭발 공격, 사회서비스 중단 등을 이유로 집을 떠났다”고 설명했다. 현재 아프가니스탄 국민 중 76만9000명가량이 유럽으로 망명했거나 망명 신청 중으로 추산되며, 이들 중 30%는 여전히 판정을 기다리는 상황이다. 이에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유럽연합(EU)에 자국민이 망명을 신청할 경우 당분간 추방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레자 바헤르 아프간 망명·송환부 대변인은 스페인 EFE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아프가니스탄의 안보 상황이 좋지 않다”며 “10월까지는 아프가니스탄 국민이 망명 자격을 받지 못해도 추방을 중단해 달라”고 말했다. 이어 “망명 신청자들이 추방돼 돌아올 경우 목숨을 잃거나 결국 테러단체로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중국·러시아 역할론 급부상 미군이 지난 5월 2일 헬만드주에 있는 캠프 안토닉에서 성조기를 내리고 있는 모습. AP뉴시스 미국이 빠지자 중국과 러시아의 역할론이 부상하고 있다. 함둘라 모히브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5일 “러시아 중국 인도 3국이 공포에 맞설 힘을 아프가니스탄에 실어주길 바란다”고 요청했으며, 수하일 샤힌 탈레반 대변인도 7일 “중국은 아프가니스탄의 친구”라며 중국의 협조를 구했다. 중국은 아프가니스탄의 지정학적 중요성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양새다. 신장위구르 지역에서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은 12일 왕이 외교부장을 중앙아시아로 급파해 상황 관리에 나섰다. 신장위구르 지역 관련 이슬람 분리 독립 세력에 대한 인권탄압 문제로 서방과 갈등을 겪는 가운데 아프가니스탄 정세 악화가 이 지역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경계하는 것이다. 장지아둥 푸단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의 인터뷰에서 “탈레반이 다시 정권을 잡으면 테러와 종교적 극단주의의 위험성이 상당히 높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프가니스탄 지역의 안정은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 성공에도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도 아프가니스탄에서 운신의 폭을 키우고 있다. 지난 9일 러시아는 탈레반 대표단을 모스크바로 초청해 협상을 벌였으며, 14일에는 자미르 카불로프 러시아 외무부 국장이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를 지적하며 탈레반과의 조속한 협상을 촉구하기도 했다. 평화협상 재개 움직임 포착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 정부와 탈레반의 평화협상은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측 대표단에는 압둘라 압둘라 국가화해최고위원회 의장, 하미드 카르자이 전 대통령 등을 포함해 8명으로 구성된 대표단이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탈레반도 자체 고위급 대표단을 꾸려 16일 카타르 도하에서 아프가니스탄 정부 측과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협상에는 이전과 다른 결과가 도출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아프가니스탄 정부와 탈레반은 지난해 9월부터 평화협상을 벌였지만 탈레반 포로 석방, 아프가니스탄 내 외국군 지속 주둔 가능성, 새 정부 체제 관련 이슬람 율법 이슈 등이 걸림돌이 되면서 성과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미군이 철수하면서 외국군 주둔 이슈에 큰 변수가 생긴 만큼 새로운 국면이 펼쳐질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